5월20일경 이번주 후반부터 시판되는 프라다폰2 쇼케이스에 초대한다는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공식명칭은 '프라다폰 프리미어 위크(PRADA phone PREMIER WEEK)'  

 

(제가 기자란 걸 알았다면 공개행사를 꺼리는 주최측에서 당연히 초청장을 안보냈을텐데...저도 왜 초대받은지는 모르겠으나 )

어쨌든... 5월 27일~29일까지 서울 삼성동 파크하얏트호텔 프렌지던셜스위트룸에서 있었던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RSVP차원에서 전화를 해서 꼬치꼬치 물어보니

SKT와 LG전자에서 명단을 선정해 발송했고

수목금 행사에 1시부터 7시까지 시간대별로 행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가운데 초청장에는 배정받은 시간대와 장소가 나와있었고요...(물론 초청장은 필참)

 

시간당 최소 30명에서 최대 50명까지만 예약돼 있었고 초청받은 사람은 동반1인이 가능했습니다. 이미 예약은 꽉 차있는 상태였습니다.

 

카달로그에는 프라다폰2의 사양이 상세하게 나와있더군요.

 

 

이 내용은 본지 기사화를 위해 선배에게 후딱 토스했습니다.

(제목을 세게 뽑아서 그런지 역시나 악플이 줄줄줄 달렸더군요 ㅎㅎㅎ)

 

기사화되는 시점만 하더라도 프라다폰2는 5월말에 공개된다는 내용만 있었지, 다른 신제품들처럼 구체적인 날짜나 자세한 사양은 언론에 일절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프라다와 손잡고 만든 180만원짜리

휴대폰을 두고 귀족마케팅이다 등등

해서 말이 많았는데요, 예상대로 소수 인원만 초청한 폐쇄적인 행사였습니다.

 

대형행사장인 그랜드볼룸이 아닌

22층 스위트룸을 잡아서 행사를 하는 것은  한적하고 노출이 안되는 장소에서 고객들에게 제품을 소개하겠다는 주최측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었는데요...

 

본인이 들어간 기념사진이 아니면 사진촬영은 일절 불가능했습니다.

사람들 없는 틈타서 잠깐잠깐 찍었지만 이내 들켜서 제지를 당했습니다.

(이런 포스팅은 사진없으면 시체인데 말이죠 ㅠ.ㅠ그래서 사진 질은 별로입니다.)

 

쇼케이스 시간은 정각에서 50분까지였고 클리닝타임 이후 고객들은 입장가능했습니다...

 

우측 문으로 들어가면 객실 3면이 전면 통유리으로 돼 있어 테헤란로와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스위트룸이 있었고... 남자 경호원(?)들이 모퉁이마다 서있고  도우미들 10명 가량이 프라다폰2 시연대에 각 1명씩 서있는 깐깐한 (?) 분위기였다고 할까요 ㅎㅎ

 

벽면은 모두 프라다폰2광고패널로 도배돼있었고, 전체톤은 블랙에 수천만원대 뱅앤올룹슨의 베오사운드에서 음악이 잔잔히 나오는 등 소품하나하나 고급스럽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명단확인후 입장하게 되면 도우미들이 일대일로 개통된 프라다폰2로 고객에게 자세하게 제품설명과 시연을 해줬고요...

 

 

시간당 최대 50명가까이 초대받았다고 하는데 그다지 붐비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간 시간대는 많아봤자 20명이 채안됐고...

주로 20대와 30대가 많이 보였고 50대와 60대도 어쩌다 한두분씩 보였습니다.

3일동안 초청받아서 다녀간 사람이 1000명정도라는 얘기를 얼핏 들었습니다.

 

이날 커플들끼리도 많이 보였는데요...핑거푸드를 먹을수 있는 공간 옆에는 프라다폰2 6대와 노트북이 설치된 테이블이 설치돼, 편하게 앉아서 시연해볼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예약판매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는데요

매니저말로는 둘째날인데도 커플폰을 예약해두고 간 커플들이 서너커플된다고 하더군요. 360만원입니다 ㅎㅎ

 

 

 

그리고 블로거스럽게 공개하는 행사장 선물^^쿠키와 초콜릿이었고요...

 

 

 

프라다폰1보다 그립감도 좋아지고 터치 방식도 달라져서 한결 쓰기가 편해졌다는 설명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쿼티자판은 꽤나 불편해보였습니다. 사용하기에 너무 작더군요. 프라다링크도 편하겠지만 활용도가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또 저처럼 손목시계 갑갑해하는 사람에게 그다지... 그리고 저걸 별도구매하지 않고 다 사야될 가치가 있을까는 잘 모르겠습니다.

 

프라다폰2는 6월 5일 정식출시된다고 합니다.

 

 

■ 이날 공개된 프라다폰2사양

 

- 타입 : 풀터치스크린. 사이드쿼티슬라이드

- 지원주파수 : GSM900/1800/1900 HSDPA 7.2Mbps&HSUPA 5.7Mbps

- 사이즈: 106.5*55*15.1mm  140g

- 배터리용량 : Li-lon 1000mAh

- 대기시간 (최대) : 250시간

- 통화시간(최대) : 3시간

- 디스플레이 LCD  : TFT Touch Screen, 256k Colors. WVGA 480*800

  픽셀, 3.0형   정전식 멀티터치 S-Class UI

- 진동알림 : 지원

- 인터넷 : SKT모바일웹 지원

- 메시지 : SKT MMS. 모바일 메신저

- 전화번호부 : 최대 2000개 저장

- 블루투스 : 지원 (Ver 2.1 + EDR)

- 내장게임 : 8종

- TDMB : 지상파 DMB지원

- 카메라 : 500만화소. 슈나이더 인증렌즈. VGA 30만화소 전면카메라

- 문서 뷰어 : MS 오피스, PDF, Text

- 유저메모리 : 70MB+8GB 대용량메모리 

- PRADA 콘텐츠 : PRADA 스크린세이버. 필름. 벨소리

 

 

 

23일 새벽 3시가 좀 넘어 들어온 문자메시지 한통.

 

10개월동안 암으로 투병하던 후배녀석이 먼길을 떠났다는 비보였습니다.

 

내내 뒤척이다 선잠이 잠시 들었는데

뒤이은 전화한통 ....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을 했다는데 확인해보라는 한 선배의 전화였습니다. 끊고나니 곧바로 대검찰청으로 가라는 회사  전화가 바로 걸려왔습니다.

 

정신없이 옷을 챙겨입고 뛰어간 대검 기자실은 11시가 채되지 않아 찼고...

노트북 자판 두들기는 소리 속에서 어느 때보다 한숨소리가 잦았습니다...

대검서 검찰수사를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했던 기자들도 말못할 회한이 엇갈리는듯했습니다...

 

결국 제가 4월 30일 대검 현관에서 본 노 대통령의 모습은 그의 마지막 외출이 되어 버렸고.....하루를 넘긴 새벽 2시...대검에서 조사를 마치고 귀가를 하던 노 전대통령에게 들은 짧은 말한마디 "최선을 다해 받았습니다"는 마지막 공식발언이 돼있었습니다...

 

소환된 후 꼭 23일 만에...........전직대통령으로서 결코 하지말았어야할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날저녁 후배 빈소...

2007년 합격자 명단에서 봤던 후배 증명사진이 영정사진으로 걸려있었습니다.

 

서른 갓 넘은 나이로 1년반이 채안된 짧은 기자생활을 마쳐버린 후배 빈소에서...

앞으로 선후배와 부대끼며 취재현장을 누비고 기사 쓸 날이 더 많아야할 후배 앞에서 

평소 말수가 적던 데스크도 이날 소주잔 앞에서 유난히 말씀이 많으셨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호전됐다는 소식만 믿으며, 자주 병실을 들여다보지 못한 미안함에 맘이 미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전 11시 후배는 회사 노제에서 동료 선후배들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눴다고 합니다...현장을 지켜야하는 기자들은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어제 빈소에서는 후배 어머니께서 동기들을 붙잡고 "너희들이 태경이 몫까지 기사를 써달라"고 하시더군요...

 

후배를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그 말씀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 됐던 대검 출두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 중 한사람이었다는 기억을 내내 무겁게 가져가겠습니다...

 

 

 

 

 

한달동안 푹 묵은 후기입니다 ㅎㅎㅎ

 

4월 7일 저녁에  NHN 신임대표와 상견례 자리가 있었습니다.

 

김상헌 대표는 NHN이 언론인 출신 대표에 이어 선택한 판사 출신 전문경영인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요...

 

이력을 살펴보면 당시 법조인으로서 아무나 할수 없는 선택을 한, 참 드문 길을 가신 분이기도 합니다.

 

김대표는 서울지법에서 지적재산권 재판부 판사 등을 거치며 기업법과 지적재산권 분야 전문가로 이력을 길러온 분인데요.

이후 1996년 LG그룹에서 11년간 재직후 2007년 NHN의 경영고문으로 NHN과 인연을 맺었고 지난해부터 경영본부장을 맡았습니다.

 

 

작년과 올해 NHN 기사를 쓰면서  당시 김상헌 본부장이 의사결정라인에도 상당히 깊숙히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이 느껴져서 감춰진 실세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고 말았는데 결국 대표자리까지 오르셨습니다.

 

 

제가 직접 만나본 김대표는요====================================================

 

 

 

■여전히 '판사스러움'이 많았던 대표

 

외과의사와 내과의사가 성향이 다르고, 신문기자와 방송기자가 같을 수 없을 듯이

검사와 판사도 그렇다는 느낌을 늘 받곤 했는데요.

김대표와 첫대면에서는 판사스런 느낌 , '판사삘(?)'이 아직 진하게 남아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법조계를 떠난지 십년이 훌쩍 지난 양반에게서 말이죠... 

 

김대표는 "판사때 경험이 많이 배여있다는 것을 느낀다. 법조인은 습관적으로 양쪽 이야기를 듣는다. 판사는 피고와 원고의 얘기를 듣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하니깐 그래서 사실관계에 집착하기도 한다" 고 말씀하시더군요. 정신적인 기조를 이루는 판단 방식이 법관 시절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였을까요...?

 

 

■ 모두가 말렸던 기업행

 

김대표는 주변 사람 모두가 말렸지만 "기업이 재미있을 것 같아" 판사를 그만두고 1996년 LG그룹행을 택했다고 합니다.

(김대표네 가훈도 "재밌게 살자"라고 하네요.) 물론 재미란 두 글자로 김대표의 기업행을 단순하게 설명할수는 없지만 말이죠.

LG에서 NHN으로 옮길 때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책이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잡스가 존 스컬리 펩시콜라 사장을 영입할 때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당신은 설탕물만 팔고 있을 거냐'고 말한 대목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시더군요

 

 

경영수업이란 자산을 준 LG그룹 시절

 

LG그룹에서 11년간 재직했는데 이 시기에 대해서 김대표는 "20~30년동안 회사를 다닌 것보다 단시간에 훨씬 가치있는 경험을 했던 때"라고 평했습니다. 이에 대해 "법률적인 지원을 했지만, 법률가로서 11년을 살았다기보다는 경영자로서 훈련했던 시기였고 , 경영자에게 가장 힘든 순간인 의사결정 과정을 다 지켜보면서, 중요한 경영판단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떄 배웠다"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LG그룹에서 김 대표는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합니다. 참 어려운 시기였다던 그는 " 외환위기 전에는 한국기업들이 매일매일 회사를 하나씩 산다고 할정도였다. LG도 그랬다. 결국 외환위기 터진 후에는 회사 파는 일만 결국 하게 되더라, 이때 배운 교훈이 잘 나갈떄일수록 조심해야된다였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김대표는 재직하는 내내 LG가 진행한 모든 인수합병에 참여했습니다.  1999년 반도체 빅딜로 큰 화제를 모았던 LG반도체 매각, 지주사 전환, 카드사태 이후 LG카드의 매각 등 굵직한 사안을 매듭지은 주역이죠.

 

 " LG에 입사하던 1996년 당시 중요한 투자 2건에 대해 reject했다. 당시  LG가 미국 가전회사 제니스(Zenith) 인수를 비롯 기업 차원의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던 시기였다. 결국 이듬해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많은 칭찬을 들었다.

 

LG 구조본에서 있으면서 그룹이 하는 인수합병 다 해봤다. 고속성장을 하다가 외환위기 직후 바뀐 상황에 힘들었다. 몇년동안 회사 팔기만 한거지. 부도 날 것 같은 회사를 막느라...LG반도체를 현대에 넘기는 약정 맺는 것을 롯데호텔에서 봤었고, LG카드사태가 최고조였다. 시총 10조로 그렇게 잘나가던 LG카드가 급전직하로 붕괴되는데 와 ~이럴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LG카드 정리되고 나서 지주회사 전환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챙겼다. "

 

그는 "LG그룹의 성공 실패 다 지켜봤다. 그때 경험을 머리에 차곡차곡 쌓아갔다. 법율담당으로 계약시 법률 검토만 한 게 아니라 중요한 경영적 판단 과정을 다 지켜봤고 내 의견을 내서 성과도 올렸다. 경영자로서 중요한 자산이 됐던 시기다."고 정리했는데요.

 

이후 2004년 LG 역사상 최연소 부사장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  오타쿠와 매니아 사이

 

김대표는 "오타쿠와 매니아를 가르는 기준은 얼굴, 잘생기면 매니아, 못생기면 오타쿠라고 직원들이 말해주더라"고 취미얘기를 슬쩍 꺼냈는데요. 사전에 김대표가 일본 만화, 일드, 미드 등 콘텐츠를 좋아하고 미술에도 관심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미술에 관심이 많다는 전언에 귀가 번쩍 ㅎㅎㅎ

 

김 사장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접한 계기로 애니메이션에 매료됐다. 최근에는 직원들과 '벼랑 위의 포뇨'를 보러가기도 했다. 로스쿨 진학때문에 미국에 때는 이 감독의 비디오 테이프를 소포로 모두 부쳐서 갔다"고 하시던데 정도되면 오타쿠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겠죠 ㅎㅎ앗 매니아이신거죠 ㅋ

 

독서량도 엄청났습니다. 예전부터 책읽기를 좋아해서 사모았는데 어느날 보니 좁은 집에 책을 둘 공간이 없어서 맘이 아팠다고 하시면서 책장에 도저히 넣지 못하는 책들을 주기적으로 버려왔다고 하셨습니다. 후배 판사가 집에 널찍한 서재를 가지고 있길래 그게 그렇게 부러울수 없었다고 하시대요. 지금도 NHN 직원들에게 많이 나눠준다고 하시네요.  얼마 전에 NHN 책 2000권을 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느순간 서재에서 책을 썩히는 것보다 책을 나눠서 여러사람이 보게 하자 싶었다며 책은 읽고나서 마음과 머릿 속에 지니고 있으면 될 뿐"이라고 정리해주셨습니다. 멋진 말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것은 창업자인 이해진 의장과 같은 코드네요^^

언제 저도 대표께 책 몇권 얻으러 들러야겠습니다ㅎㅎㅎ
 

 

■그가 바라보는 인터넷생태계는?

 

김대표는 법조인 출신 경영인이라 관리를 잘 할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다는 걸  안다며, 하지만 자신은 오히려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하고 싶어서 거꾸로 이곳에 오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김대표는 NHN의 장점으로 벽이 없고 창의력이 많다는 것을 꼽았고

반면 경험이 부족하고, 답답하고 거만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스스로 외부제휴하는데 부족했던 것 같다며 이제 다양한 파트너사들과 함께 성장할수있도록 당신이 직접 앞장 서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불거지고 있는 규제이슈에 대해서는

 

" 인위적으로 과하게 행해지는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인터넷산업은 지난 10년간 급성장한 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좋은 혜택을 이용자들에게 줬다. 물론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이 음지와 양지는 공존한다. 인터넷업계에 규제이슈는 피해갈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터넷생태계는 특장점이 있다. 개방성과 자정능력이 있기에 선순환이 한다고 믿는다. 잘못된 이용가치는 규제해야 옳지만 이용자들이 참여로 쌍방향으로 좋은 가치를 자연스레 만들어가는게 이상적일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자연스레 길이 나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끝으로 정보가 균등하게 분산돼야한다는 NHN의 창업정신에 동감한다며, CEO로서 잘 살려보고 싶다는 포부도 표하셨습니다.

 

 

 

인터넷업계에서 보기에는 김상헌 대표는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물로 비춰질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러했으니깐요. 

3시간 동안 대화록을 이곳에 옮겨 정리하면서,  새삼 드는 생각은

갑자기 짜잔하고 나타날수 있는 인물은 드물고, 늘 어디선가 준비하면서 그럴만한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온 것이며,  또 그 사람을 알아보는 최고경영자는 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휘영 전 대표시절에 NHN은 매출1조원시대를 열며 성장신화를 이뤄냈고 지금같이 시장은 정체되고, 전방위에서 규제이슈가 몰아치는 마당에  NHN 대표직을 맡은 김상헌 대표의 어깨가 참 무거워보입니다만.....

반면 김대표에 의해 회사규모에 맞게 다시 성장을 하고 또 그에 걸맞게 기업시민으로서 역할도 하면서 그려갈 NHN의 미래가 어떨까도 궁금해지네요.

 

 

 

 

요즘 이 분과 일주일에 3번씩 꼭 만납니다 ㅎㅎㅎ

 

지난해 대검서 수사기획관으로 노건평씨가 연루된 세종증권 인수비리를 수사하던 최재경 서울지검 3차장 검사입니다.

 

일주일 3차례 이뤄지는 기자들과의 브리핑에서 수사상황을 캐묻는 문답도 오가고...속을 떠보는 질문도 오가고... 선문답도 하고 뭐 그러는데요

 

요즘 지검(작은집)은 대검(큰집)서 전직대통령 일가를 조사하는 워낙 큰 사건이 진행 중이라, 지검이 조용해진 덕분에 특수부 등 수석부서를 거느린 3차장도 당신 말로는 한가하셔서 책을 많이 본다고 하시던데요.

 

 

 

"요즘 검찰선배의 추천으로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 한국번역본: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을 읽는다. 그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오더라 . 저자가 38년생인가그런데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지고 나서 일본 과학계에서는 70년동안 풀한포기 안날거다라고 했다고 하더라. 그러나 저자가 보니 1년 뒤에 히로시마에 풀이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더라. 그 구절을 읽으면서 '살면서 너무 맘 흔들릴 것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기자들 요즘 대검 수사 때문에 시달리는 거 보니 불쌍하더라. 그냥 히로시마에 원폭 떨어졌다고 편안하게(?) 생각하고,스스로 괴롭히면서 살 필요 없다."

이 대목에서는 얼굴 누렇게 떠서 피곤에 절어있던 기자들에게서 웃음이 터져나왔는데요...기자들은 연이어 3차장에게 "이러다 우리한테 왕폭탄 날리는 거 아니냐, 어떤 걸 대검 사건 후속으로 터뜨릴려고 준비하고 계시냐"며 꼬치꼬치 물고 늘어졌는데요^^

 

세상사 버티는 방법은 가지가지 아닐까 한다는...

 

원폭이 떨어져 죽어버린 검은 땅에서도 1년뒤에 파란 풀이 돋아날정도로 끈질긴 생명력이 있었으니깐요...그리고 누구도 꺾지못할 희망도요...

 

9일 별세한 고 장영희 교수의 말처럼 넘어진 순간 다시 일어설 것을 준비했고 넘어졌으니깐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운다는 의지나.....

 

또 소아마비였던 고인을 엎고 학교에 가기 위해 눈이라도 내리는 날 아침이면

연탄재를 골목길에 미리 뿌려놓던 어머니란 존재처럼 말이죠... ^^

 

 

 

 

아마 지난해말부터였죠?

애플 앱스토어 전도사로 알려지기 시작한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

평상시 블로그에서 애플 앱스토어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열심히 쓰시던 글들이 생각나는데요....

 

올초 스마트폰 관련 자회사 '터치커넥트'를 설립했다고 블로그에 밝히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낼름 기사화

 

이 사장은 이 회사를 통해서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서비스도 하고

또  드림위즈 내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생긴 노하우를 통해

이동통신사와 언론사 등에도 컨설팅을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찬진 사장이 스마트폰 특히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에 관심이 지대하고 사업화를 위해 백방으로 애쓰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회사가 별도 설립된다는 것은 사내에 TF팀을 꾸렸다는 것과는 또다른 무게감을 주지요...

 

 

이찬진 대표는 모바일인터넷이란 크로스플랫폼이란 기회에서 대세를 바꾸기 위해

승부수를 띄운 것 같은데요...

 

이대표도 "현재 인터넷포털 시장은 네이버의 독주체제에 다음, 네이트, 야후, 구글, 파란 등 6개 회사가 영역을 구축하고 있고, 이외 포털들의 영향력은 많이 쇠퇴했다”며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차별화 전략으로서,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이 가져올 변화와 기회를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서 시작했다”고 사업을 시작한 취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드림위즈는 업계에서 새로운 것을 최초로 많은 것을 시도했으나

시장에 반향이 없어서 "비운의 포털"로 불리기도 했는데요

 

다른 포털에 없는 서비스 중에

 

휴대폰 전문서비스 "포니"(http://p-honey.dreamwiz.com)가 먼저 선보였던 기억이..이곳에서는 최저가로 구매할 수 있는 휴대전화 쇼핑기획전 운영됐었고, 휴대폰 전자상거래의 토탈솔루션 'SQC시스템'이 있기도 했죠. 국내 이동통신정보 뿐만 아니라 글로벌 모바일 정보를 전문 패널들 제공되기도 했고요

 

또 개인의 취미와 관련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매니아(http://mania.dreamwiz.com), 댓글경매와 비밀장터라는 이색서비스를 하고 있지요

 

 

신선한 서비스들이 기억납니다. 그러나 네이버 등의 검색 레버리지 효과 등등의 이유로 결국 소수 마니아만 즐기는 서비스로 남았지요...

 

이찬진대표는 한글과 컴퓨터를 떠난 후 시작한 인터넷포털 사업에서 늘 먼저 뭔가를 시도했으나  본인의 바람과는 달리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는데요

이를 두고 참 운이 없다는 말이 꼬리표처럼 달라붙어다녔죠...

 

남들보다 한발 앞서 시장가능성을 알아봤고

그런만큼 공도 많이 들이고 있는 모바일인터넷 사업에서

이찬진 대표가 던진 승부수가

그 지겨운 꼬리표를 떼내고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시장은 살아 움직이니깐요.....